캄보디아에서 제일 고생한 점이라면 역시 먹는 것이네요.
개인적으로 현지식을 자주 먹는 편인데,
캄보디아는 역시 중국이나 기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차원이 너무 달랐습니다.

위생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경제 상황이 나쁘기 때문인지,
생활인들의 수준이 썩 좋지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것 하나하나 조심스럽더군요.
킬링필드 위령탑 참배를 마치고 돌아서려니 배가 고파, 인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마땅한 식당이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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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출한 가건물입니다. 뒤쪽은 생활집이고. 음식을 주문하니 주방을 뒤져 반찬 몇개를 주섬주섬 챙기시더군요. 팔 수 있겠다고 해서 더 놀랬습니다. 아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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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온 반찬의 전부입니다. 사진으로 찍으니 보기는 근사하네요 ^^; 움론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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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이 지났어도 이 친구 이름을 아직도 기억학 있네요. '사랏' 워낙 쉬운 이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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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과 밥을 비벼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반찬은 거의 간장으로 이뤄져 있고요. 물론 국물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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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뚝뚝. 사진으로 보니 꽤 운치 있습니다. 갑자기 제 사진술이 향상된 듯.






















Posted by hojai.


미처 못다한 킬링필드 기념관, 혹은 위령탑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 보지요.
프놈펜을 다녀오시는 분들이 거의 모두가 방문하게 되는 가장 유명한 킬링필드 기념관입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혼자 찾아간 곳이 아니라, 가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러나 수도 프놈펜에서 1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곳이 가장 잘 정비된 곳이기 때문에,
손쉽게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뚝뚝으로 가도 쉽게 도착할 수 있겠더군요.

예상대로 외국인이 꽤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현지 킬링필드 기념관 설명을 해주실 분을 구했습니다.
30여분 정도 동행하며 가이드를 해주신다고 하더군요. 10불정도였습니다.

천주교 신자라고 하시는 이 가이드 분의 얘기가 꽤나 인상이 깊었습니다.
(이분의 설명을 비디오로 촬영해 왔는데,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프랑스도, 베트남도, 일본도 ...혹은 폴 포트도 밉지 않다. 그저 우리가 못나서 그런거다"

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이 너무도 제 가슴을 쎄게 때렸습니다.
왜 강자들을 미워하지 않는 건지, 너무도 불교도 적인 생각에 감동과 살짝 실망하기도 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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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의 모습입니다. 이 안에 사람의 인골과 해골을 모아 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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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 곳곳이 모두가 무덤입니다. 한 나무 구덩이에 보통 300~400명씩 죽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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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ing tree라고 친절하게 이름도 붙어 있습니다. 사방 천지가 사람 뼈입니다. 조금 집중했더니 바닥에 사람 이가 수개가 눈에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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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저런 야자나무 날카로운 부분에 우는 아이를 찍어 죽였다고 설명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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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켠에 마련된 수용소 지형도와 희생자들. 그러니까 저 사각형이 웅덩이 입니다. 대략 2만명이 죽은 수용소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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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사망해서 차마 개개인 무덤을 못만들고두골만 모아서 위령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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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생들이 다녀갔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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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 앞에 걸려 있던 추모를 위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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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의 역사에 대한 얘기를 곳곳에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저 왼쪽의 영화배우 같은 남자는 호주의 유명한 기자더군요. 킬링필드 당시 이 곳 수용소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물론 취재중이었죠. 적지 않은 저널리스트들이 죽었다고 하길래 조금 놀래기도 했습니다.







Posted by hojai.


킬링필드는 캄보다아 전역에서 약 4년간 걸쳐 전면적으로 일어난 정치투쟁이고, 일종의 내전이기도 합니다. 30년간 고난의 행군을 벌인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 루즈'가 친미 정부인 론롤 정부를 축출하면서 시작된 캄보디아 개조 프로젝트 입니다.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샐로스 사르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라는 무장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학살했다.----(위키피디아 '킬링필드)

말 그대로 학살을 벌인거죠. 초기 론놀의 친미정부 핵심인사 숙청으로 시작한 피의 보복은, 왕당파 친프랑스파, 친베트남파를 비롯한 외세를 등에 입은 정치 세력은 물론, 이후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을 방불케 하는 미시적 구별짓기까지 일어나, "안경을 끼고 있으니 저 사람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죽이고, 귀걸이 했다고 죽이는 일종의 아비규환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지난번 설명드린 대로 폴 포트의 이상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원시적 공산제도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미친 환상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런 환상이 일어난 배경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여행도중 자꾸 머리를 스치더군요. 문득 킬링필드 유적을 보면서 먼가 기시감이 드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킬링필드를 여행오는 금발의 외국인들은 어떻게 이 사건을 이해할 지도 궁금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동시대를 경험한 아시아인, 한국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히틀러의 유태인 집시인 대학살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극우정권, 혹은 극좌정권의 미친 문화대혁명으로 생각할까?"....

일단 킬링필드를 잘 학습하지 못한 상태에서지만 저는 단박에 해방 정국이 떠오르더군요. 캄보디아 역시 프랑스가 물러나고 순식간에 4개의 정부가 교체될 정도로 정치가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지도만 봐도 단박에 이해가 되는게, 캄보디아는 세계 최고의 빈국이자 약소국입니다.

그런데 왼쪽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아세안 강대국 태국이 버티고 있고, 다시 오른쪽에는 아시아 최강의 공산당인 베트남 공산당이, 북쪽으로는 마오쩌둥의 중국이 버티고 있었죠. 게다가 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오랜기간 지배를 해왔고 시아누크라는 아주 싸이코 스러운 왕정이 유지됐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일본 세력도 한동안 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죠.

해방전후 조선의 상황도 비슷했죠. 소련과 미국이 승전국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분할하고 UN의 불안정한 통치가 시작됐습니다. 국내에도 공산당에서 부터 친미파까지 복잡한 정치다툼이 벌어졌죠. 그냥 다툼이 아니라 생과 사를 건너드는 테러와 폭력의 장이었죠. 실제 당시에 테러에 희생되신 분들도 많았고.

결국 이 같은 복잡한 정세는 6.25라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정권이 뒤바뀌는 지역에서는 학살과 감금이 자행됐죠. 대략 아시는 내용이라 생략합니다. 제가 이해한 틀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정치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는 약소 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내전, 전쟁의 외모를 갖지 않았을 뿐 결과적으로는 전쟁이었다는 관점으로 이해를 하면서 킬링필드를 받아들였습니다.

프놈펜의 뚜오슬렝을 보게 되면, 마치 하나의 코스처럼 킬링필드 위령탑을 방문하게 됩니다. 프놈펜에서 서북쪽으로 40여분 자동차를 타고 가면 나오더군요. 저도 자세한 위치를 모르겠네요.

프놈펜에서 가장 가까운 유적지이기 때문에 수 많은 관광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약 2~3만명의 어린이들과 민간인들이 이 수용소에서 약 2년간 살육됐다고 합니다. 하루에 50명을 죽여야 가능한 숫자 이네요. 에효.



Posted by hojai.


그러고 보니 2009년 늦가을에 다녀왔던 캄보디아 얘기를 미처 마무리 하지 못했군요.

그 이유는 비교적 간단한데요. 킬링필드 얘기를 하려고 보니, 제가 사실 그 나라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겨울 동남아시아 역사에 대해서 다시 책을 끄집어 들었고, 태국과 베트남에 가려졌던 캄보디아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를 가져야 했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타 다시 작업을 시작하다 보니 어느순간 5개월이 훌쩍 지나간 것입니다. 어느새 다음 여행을 가야할 때가 됐는데.

재빨리 캄보디아 연재를 끝내고, 저는 4월에 태국에 가볼 예정입니다.

어줍잖은 영어 블로깅은 잠시 쉬고, 당분간 캄보디아에 집중토록 하겠습니다.

우선, 캄보디아 여행에서 가장 감동 받았던 뚝뚝 부터 보여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뚝뚝 정말 최고로 멋진 교통수단이 아니던가요?

1. 낮에 탄 뚝뚝의 시원한 바람


 

2. 밤에 탄 뚝뚝이 보여주는 프놈펜의 황량함

Posted by hoj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