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봄, 군산 개복동에서 화재사건이 있었다. '개복동'이란 낯선 지명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사람들은 그 곳을 '감둑'이라고 불렀다) 그 사창가 화재로 인해 무려 22명의 꽃다운 젊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쇠창살과 밖에서 잠겨진 문 때문이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을 만났더랬다. 그 가족들은 위문차 찾아온 군산시장을 둘러싸고 한 바탕 욕지거리를 풀어놓기도 했다.

그중 한 희생자 여성의 오빠는 울고 있었다.

"동생이 이런 데서 일하는 지 모르고 있었어요. 흐흐흑"

그 오빠를 2개월 뒤에 혜화동에서 개최된 여성의 날 행사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무슨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있었는데 그의 표정은 마치 도인처럼 비쳤다. 그간의 고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개복동 사건은 꽤 오래 지속됐다. 보상은 잘 받았을까. 그 뒤의 일은 잘 모르겠다.

'매춘(賣春)'이란 개념은 성인으로 가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비슷하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학교를 가는 길목에 사창가가 자리했다. 용기있는 친구들은 일부러라도 그 앞을 자전거로 지나다니며 어여쁜 누나들을 훔쳐보곤 했다. 그러나 소심한 아이들은 억지로 그 길을 피해다녔다. 눈을 감으면 빠알간, 마치 푸줏간 같은 사창가는 시야에서 사라졌다.그 때는 그 같은 더러움와 두려움을 영원히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하자, 일부 고집스러운 선배들은 억지로 사창가 골목을 끌고 다녔다. '원하면 넣어 줄 수 있다'는 멘트와 함께 말이다. 고역이었다. 즐겁지 못했다. 마치 정육점 고깃처럼 보였던 아가씨들이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20대 후반이 되서 였지만 '사창가'라는 이미지는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끔찍함' 그 자체였다.

이후에 직업적인(?) 특성으로 인해 않게 적지 않은 매춘 관련 취재를 했었다.

*종로3가 쪽방촌을 살폈고, *김강자 서장과 파주 용주골에, *안산 모텔촌에서 티켓다방을, *동두천에서는 필리핀 여성들의 감금생확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조건만남 녀들을, 2005년에는 미아리와 청계천 용산에서 '성매매금지법' 관련된 업주들의 뜨거운 목소리를 수집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수 많은 사창가 관련 인물들을 만나며 어른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동일한 의문을 가졌다. 도대체 왜 이 같은 '악(惡)'과 더러움이 우리 곁에 공존해야 하는 것인가. 사창가를 없앨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그러나.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여기는 아주 오래 된 동네에요. 원래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곳이고. 매춘의 역사는 인류가 시작된 이래 계속된 것이라구요. 억지로 막으려고 하면 안된다고요."(업주)

"공창제 만이 해결이라니까요."(김장자 전 경찰청 여청과장)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세요. 무조건 강제로 폐쇄 시켜야죠. 경찰이 여기를 보호하고 있다고요."(여성운동가)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라고요? 천만에요. 이 곳에서는 돈을 벌고 있잖아요"(엥겔스)


이 세가지 의견은 많이 다른듯 했지만 별반 다를(?) 게 없었고, 발견했다 믿었던 정답은 빙글빙글 돌다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매춘 지역은 끊임없이 확대되거나 이전됐고, 그 방식 역시 기묘한 형태로 진화해 갔다. 그때쯤 용산역 앞에서 만나는 야시시한 옷을 입은 아가씨들도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다는것을알아챘다. 현장에서 만나는 아가씨들이 마치 동네 꼬마들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도 나이를 먹더니, 처음에 먹었던 마음은 사라지로, "저것 역시 삶의 다양한 방식의 하나가 아닐까"하는 보수적인 시각이 덧씌워 진 것이다. 그럴 때쯤 "이 땅에서의 매춘은 어떤 방식으로 펼쳐왔을까"하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책의 소재로 어떨까 하는 생각도, 누가 이와 비슷한 소재로 글을 썼다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차마 내가 나서 글을 써봐야 겠다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최근에, 문화일보 기자 출신인 홍성철 기자께서, 근래 보기 드문 역작을 펴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베테랑 기자 답게, 아주 정석적으로 이 땅에서의 매춘의 역사를 아주 찬찬히 들여다 봤다. 대단한 일이다. 저널리즘적 접근이란 별 게 아니다. 발로 뛴 기자의 노력이 배어 있다는 뜻이다. 그의 노고가 부러우면서도 배아픈 것은....이 책의 성과가 매우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 낸 것이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내가 살아온 동네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내 고향은 바로 철도의 도시였다.유곽의 시대는 철도와 함께 뿌리를 내렸고 한국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아..그들도 사람이었는데...

"이리역 옆에 '인철이네 집'이라고 불리는 사창가가 있었어. 전국 3대 사창가였어. 서울 양동, 부산 완월동, 그리고 전라도는 바로 이리 철인동이었다니까. 77년 이리역 폭파사고 때, 완벽하게 날라갔어. 당시 공식적인 피해가 사망자 몇 백명이었거든. 그런데, 그 사창가에 살던 사람들은 주민번호가 없는 사람들도 많아서 공식 피해에 들어가지 않았을거야. 철도 옆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판자집들이 다 날라갔다니까. 아마 수 백, 수천명이 죽었겠지. 그 폭파사고 덕에, 이 도시가 이렇게 깨끗해진 거지.... 죽은 사람들에게는 참 안된 일이지만...." (중학교 사회선생님)


Tip.
1.화폐제도와 매춘은 매우 강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2.집창촌의 성립은 근대적 사회 시스템과 관계 있다?
4.푸코가 한국이나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정신병원보다 집창촌을 연구했을 것이다.
3.선과 악이 공존하는 게 아니라, 사람은 원래 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곽의 역사

홍성철 지음/페이퍼로드

* 'OOO역사' 라는 제목의 책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꼭 사서 읽어야 할 책

* 'Jounalism is the best job in the world 라는 신념을 믿는 사람

* 미심쩍은 점은, 모든 악은 '일제로부터 건너온 '근대화' 때문이라는 것---결국 일본에서의 매춘의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겠다는 결론이....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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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ane 2007/09/03 10:45  Modify/Delete  Reply  Address

    아.... 흥미롭네요.
    그리고 쓰신 글귀 하나하나가 오묘하게 공감의 감정을 이끌어 내십니다.
    역시 호자이님. (-_-)b

  3. manua1 2007/09/03 16:07  Modify/Delete  Reply  Address

    `사람은 원래 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가 아니라 사람은 원래 악하지 않나요? 나이를 먹을수록 인류 최고의 사상가는 荀子였다는 생각이 자꾸자꾸...악이라는 것이 꼭 원자폭탄을 터트리고 인종청소를 해서 악이 아니라 사소한 이기심, 질투, 배신, 의심, 분노, 협잡 뭐 이런 것들이 진짜 큰 악인거죠...특히 현대인에게는...감정과 욕망을 타고난 이상 인간이 선해질 수는 없는 듯...

    • hojai 2007/09/04 10:57  Modify/Delete  Address

      음...너 너무 나갔다. 쓸 말이 없어서 그냥 써본 얘기야 ㅠㅠ

  4. 이안 2007/09/04 07:00  Modify/Delete  Reply  Address

    호자이님의 블로깅의 최대미덕은 화두의 제시인 것 같습니다..

  5. 라니 2007/09/05 01:50  Modify/Delete  Reply  Address

    전에 미군과 연계한...재미여성운동가가 쓴 책도 재미있었는데,
    제목은 기억이 안나고..최근에 읽은 재밌는 책은 글로벌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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