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3일 저녁 6시 20분. 종로1가 SK빌딩에서 영풍문고 사잇길에 영철버거 간판이 내걸렸다.
우연하게 그 앞을 지나가던 나는 약 1분간 그 앞에 서서 감상에 젖었다.
"아~그는 참 열심이 살았구나" 그는 이제 메이저리거가 됐다.
우연하게 그 앞을 지나가던 나는 약 1분간 그 앞에 서서 감상에 젖었다.
"아~그는 참 열심이 살았구나" 그는 이제 메이저리거가 됐다.
'영철버거'와 '설성반점 번개'
고려대학을 수식하는 관용어구는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가운데 '촌스러움'을 으뜸으로 칩니다. 요즘 부쩍 세련되진 학교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컨추리한 '추리함'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93년도에 종로학원에서 재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콧대 높던 여학생들이 넘쳐났던 불어반에서 상당수의 "강남 깍쟁이들"을 만난 덕분에 저는 K대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말로만 듣던 서울내기들의 세련됨과 이질감을 차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덕분에 대학생활을 편하게 지내긴 했는데----글쎄요 잘한건지 먼지..)
고대의 촌스러움은, 사실 권력의 후광효과에 기댔기 때문에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토지에 근거했던 지주권력과 야심만만한 젊은이들과 결합된 '입신양명'이즘입니다. ----그런데 그 방면에 말 만들기는 제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고대의 독특한 촌스러움이 엉뚱하게(?) 빛을 발하는 분야가 있었는데요. 바로 지금은 전국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영철버거'와 '설성반점 번개'가 그 주인공입니다.
사실.

고려대학교라는 촌스러움 + 신뢰감 + 입소문 전략 + 강연 혹은 장학금 기부 + 고대출신 기자들의 기사화 도움 + 출판 및 방송출연 ====> 브랜드 화
사실 서울이 아닌 대학이나, 혹은 서울대학교 앞에서 짜장면을 배달하거나 버거를 만들어 팔아가지고는 별 얘깃거리가 안됐을 겁니다. 다행이도 고려대학이라는 독특한 비빌언덕이 있었는데, 그 촌스러움이 짜장면이나 스트리트 버거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겠죠.
철가방 번개의 전성기는 90년부터 96년까지 입니다. 저도 딱 한 번 정도 주문해 봤는데, 정말 바람처럼 달려오시더군요. 지금은 사업에 실패하고 고생을 겪고 있다고 하던데, 잘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영철버거의 성공에 제가 조금 감상에 젖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기억 때문입니다.
때는 그러니까 2000년 여름 입니다. 글쎄요 가을이었을까요?
개운사 입구 사거리는 매우 우중충했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2000년 여름이란 IMF 후폭풍이 채 가시지 못한 매우 우울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환율이 1달러에 1500원을 하던 시절입니다. 더구나 저는 졸업을 앞둔 처절한 복학생이었습니다. 선배와 함께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선배와 조금이라도 다툰 날이면 그 좁은 하숙방에서 잠자기가 싫어서 친구 집에 가서 맥주나 한잔 하고 밤 늦게 하숙집에 돌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친구의 하숙집. 말 그대로 쓰레기 장이었죠.
컴퓨터 한대, 퀴퀴한 냄새, 빨래더미, 새우탕면 찌끄레기들----. 그 어두침침한 값싼 하숙방에서 그 젊은 청춘들은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하반기.
제 친구의 하숙집 앞세 낯선 포장마차가 하나 개업을 했습니다. 양배추를 듬뿍 쌓아놓고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서 소스를 푸짐하게 얹어 놓는 싸구려 버거였죠. 1000원. 조금 독특한 마케팅이라면 펩시콜라를 무한정 주는 마케팅이었습니다.
"아저씨 이렇게 팔아서 남겠어요?"(호자이)
"어휴---, 남으니까 장사하지요."(영철버거 사장님)
제 하숙집에서 제 친구 하숙집까지의 거리는 약 100여미터. 제 하숙집에 TV가 없던 저는 털래털래 걸어와서 영철버거 3개를 사거 제 친구 하숙집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당시에 '세 친구'라는 시트콤을 할 때였는데, 정말이지 그 시트콤을 보면서 우울했던 대학 4학년을 견딜 수가 있었더랬지요.
하루는 밤 늦게 12시까지 문을 열고 버거를 만들고 계신 영철 사장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친절했고 열심이었습니다. 이제 오픈한지 1~2개월 밖에 안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을 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던 때였습니다. 당시에 그는 트럭을 개조해서 그 뒷편에서 버거를 구웠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아저씨 너무 늦게 들어가시네요?"(호자이)
"그러게요. 좀 늦었습니다."(영철)
"잘 팔리세요?"(호자이)
"열심이 팔아야죠"(영철)
왠지 그냥 버거만 사가기는 머해서 한 마디 더 툭 던졌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버거를 파세요?" 그는 잠시 회한에 잠긴 듯 조금 뜸을 들이더군요. 그리고는 힘겹게 몇 마디를 이어갔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여기서 스트리트 버거를 만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죠...." 그리고는 자신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아주 짤막하게 요약을 하더군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매우 인상적인 어구였더랬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2003년에 가게를 인수해서 매장을 열었고, 이후에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강연회도 하는 등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대표로 성장하기에 이릅니다. IMF라는 파고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처럼 그 6년간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그의 종로분점 진출 소식을 접하고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이 일을 하고 성공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하고 말입니다. 강남에도 제대로 된 매점을 하나 내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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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홋~,,종로까지. 치즈버거(피자 치즈 얹어 주는 것) 맛 좋다. 1500원짜리.
오늘 다시 가서 보니, 기본이 2000원, 그리고 음료수와 다른 옵션 포함한 세트가 3200원을 받더군. 맥도널드와 경쟁할 것 같아.
그럼 학교앞이랑은 다른 가격, 다른 제품이 되겠군.
저도 이 글을 읽으니 그 풍경들이 절로 떠올라 흐뭇해지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
영철버거 사장님 참 대단한 뚝심이네요. 각종 프리미엄 버거/샌드위치가 경합하는 종로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사못 궁금해지네요.ㅎ
써클 20년사를 훑어보매.. 선배들과 동기, 그리고 90년대 학번을 가진 후배님들의 분위기와 요즘 후배들의 분위기는 정말 너무 다르다는.. 20년 사진 모아 놓으면 고대 변천사를 느낄 수 있습니당. ㅎㅎ
이런 얘기, 바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