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미뤄놓은 숙제를 하듯 독한 마음을 품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 밤에 정리를 못하면 스리랑카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기록하지 못하고 지나갈 수가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월요일 저녁에 한국에 도착했으니 벌써 스리랑카에서 느꼈던 뜨거운 감정을 상당부분 잊어가는 중입니다.
원래 엑기스만을 골라 적어야 하지만 제 기억의 정확성 유지를 위해서 편년체(?)로 작성을 할까 합니다.
2월11일(일) 스리랑카 첫날

성스러운 땅 스리랑카. KOICA 부단장으로 일하고 있는 행란후배님의 존재로 인해, 내 인생에 예정되지 못한 땅에 밟게 됐다. 낯선 땅. 불길한 이미지. 스리랑카란 이름엔 어느샌가 신비롭고 따사로운 홍차의 땅이란 이미지는 사라지고, 못살고 지저분한 제3세계의 이미지만이 덧씌워졌다. 게다가 쓰나미의 피해까지. 첫날은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다. 지쳐 쓰러짐. 대신 젊은 KOICA 단원들과 식사하며 즐겁게 이야기 함. 피로가 잘 풀리지 않음.
- 경남기업이 지었다는 아파트(로열파크) 구경.
- 택시타고 시내 중심부로 진입
- 미술관과 빅토리아 파크 구경
- 싱알리스 70% 타밀 20% 기타 10%
- SLFD(정당) 전임 대통령 6년x3= 18년 집권. 전 노동부 장관 대통령 취임
- 사회주의 정당이긴 하지만, 있는 사람들이 해먹는 정당에 불과
- 생활불교이기 때문에, 동네에 있는 사원에 꽃 가져다가 바치는 일이 일과
11시 :강가라마 템플 방문
강가라마 템플, 및 부속 호수. 아름답고 정감 있는 콜롬보 최대의 사원. 그러나 조금은 실망스러운 수준. 불교의 최대 성지인데 말이다. 주일학교가 열리고 있어고, 어머님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이 곳도 교육열이 무척이나 높다고 한다. 대학진학률 2%. 물론 잘 하는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조기유학.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이 사진이 바로 강가라마 템플 내부에서 찍은 사진. 스리랑카 불교는 밖에서 인지되는 불교의 성지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게 힌두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하다. 아래 코끼리 상이 대표적인데, 부처님 상이 마을 곳곳에 자리한 만큼 이 코리리 상 역시도 삼지창과 함께 마을 이곳 적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 어디가나 LTT의 모습(리버레이션 타밀 타이거 에흘렘)
- 골 로드의 길이 원 웨이인 이유 ( 테러 방지 차원)
- 바다지(뚝뚝)를 타고 이곳 저곳으로 이동
- 12~1시까지 엄청난 길을 걷다. 대강 2km정도
- 식사 2인 1300루피. 밥값이 싸서 좋긴 한데. 고급 식당은 생각보다 비쌌다.

2시 : 박물관
오늘의 하일라이트.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물 인상적. 내용은 고인돌이 가장 좋았고, 처용 탈이 인상적이었음. 한국의 문화가 스리랑카와 맞닿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음. 스리랑카 고인돌은 BC 800~400년 정도 사이 거라고? 우리나라는 BC 3000년 정도 건데?
스리랑카와 우리나라와의 유사성은 앞으로 꾸준하게 제기될 이슈 입니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기 때문인데요.
1. 쌀문화를 공통적으로 공유
2. 불교 문명의 시원적인 공간
3. 인도에서 출발하는 남방 문명의 중심이자 경로로서의 역할
때문에 누구라도(아니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스리랑카 박물관에 가신다면 한국 문화와의 유사성을 담박에 알아챌 지 모를 일입니다. 제가 몇 가지 사례만을 들어보겠습니다.

스리랑카 박물관에는 유독 탈~이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봉산 탈춤의 원형으로서의 탈춤 놀이가 이곳 스리랑카에서 중요한 문화더군요. 탈 모양이 아주 눈에 익숙하죠?

제가 한 눈에 깜짝 놀랐던 탈 입니다. 머리에 코브라 두마리를 얹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생소하지만 저는 순간 "앗 처용탈이다"하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생김새가 처용탈과 비슷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피부색이나 머리모양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흡사합니다.
이게 바로 처용 탈인데요. 다시 보니 많이 다르군요. 그런데 "처용이 서역인일지 모른다"는 기사가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박혁거세나 석탈해 등 신라 초기 중요한 인물들이 대다수 스리랑카나 인도에 많이 살고 있는 타밀인일지 모른다는 기사도 눈에 뜨이는 군요. 때문에 처용 역시도 이곳 스리랑카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순전히 학문적 밑바탕 없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 문화라는 게 온전하게 제 혼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경험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요런 스리랑카 장고 역시도 스리랑카가 우리나라와 쉽게 분리될 수 없는 문명권이라는 증거인 셈입니다. 정말 신기하게 닮았지요? 설마 우리나라에서 장고를 독자적으로 만들 수는 없었을 테고 어디에선가 영향을 받았다면 이런 자료들을 모으는게 중요할 텐데요. 민속문화박물관 학예사님들이 열심이 하고 있을 텐데 제가 잘 모르는 것 뿐일 겁니다.


원래 엑기스만을 골라 적어야 하지만 제 기억의 정확성 유지를 위해서 편년체(?)로 작성을 할까 합니다.
2월11일(일) 스리랑카 첫날

콜롬보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시청 청사 모습. 의회나 행정부는 콜롬보가 아닌 인근 행정수도에 자리하고 있다.
성스러운 땅 스리랑카. KOICA 부단장으로 일하고 있는 행란후배님의 존재로 인해, 내 인생에 예정되지 못한 땅에 밟게 됐다. 낯선 땅. 불길한 이미지. 스리랑카란 이름엔 어느샌가 신비롭고 따사로운 홍차의 땅이란 이미지는 사라지고, 못살고 지저분한 제3세계의 이미지만이 덧씌워졌다. 게다가 쓰나미의 피해까지. 첫날은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다. 지쳐 쓰러짐. 대신 젊은 KOICA 단원들과 식사하며 즐겁게 이야기 함. 피로가 잘 풀리지 않음.
- 경남기업이 지었다는 아파트(로열파크) 구경.
- 택시타고 시내 중심부로 진입
- 미술관과 빅토리아 파크 구경
- 싱알리스 70% 타밀 20% 기타 10%
- SLFD(정당) 전임 대통령 6년x3= 18년 집권. 전 노동부 장관 대통령 취임
- 사회주의 정당이긴 하지만, 있는 사람들이 해먹는 정당에 불과
- 생활불교이기 때문에, 동네에 있는 사원에 꽃 가져다가 바치는 일이 일과
11시 :강가라마 템플 방문
강가라마 템플, 및 부속 호수. 아름답고 정감 있는 콜롬보 최대의 사원. 그러나 조금은 실망스러운 수준. 불교의 최대 성지인데 말이다. 주일학교가 열리고 있어고, 어머님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이 곳도 교육열이 무척이나 높다고 한다. 대학진학률 2%. 물론 잘 하는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조기유학.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이 사진이 바로 강가라마 템플 내부에서 찍은 사진. 스리랑카 불교는 밖에서 인지되는 불교의 성지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게 힌두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하다. 아래 코끼리 상이 대표적인데, 부처님 상이 마을 곳곳에 자리한 만큼 이 코리리 상 역시도 삼지창과 함께 마을 이곳 적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 어디가나 LTT의 모습(리버레이션 타밀 타이거 에흘렘)
- 골 로드의 길이 원 웨이인 이유 ( 테러 방지 차원)
- 바다지(뚝뚝)를 타고 이곳 저곳으로 이동
- 12~1시까지 엄청난 길을 걷다. 대강 2km정도
- 식사 2인 1300루피. 밥값이 싸서 좋긴 한데. 고급 식당은 생각보다 비쌌다.

스리랑카에서 지겹도록 먹게 된 커리 음식. 기본적으로 쌀밥 컨셉이기 때문에 우리음식 문화와 아주 유사하다. 손으로 밥먹는 것을 빼놓고 말이다.
2시 : 박물관
오늘의 하일라이트.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물 인상적. 내용은 고인돌이 가장 좋았고, 처용 탈이 인상적이었음. 한국의 문화가 스리랑카와 맞닿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음. 스리랑카 고인돌은 BC 800~400년 정도 사이 거라고? 우리나라는 BC 3000년 정도 건데?
스리랑카와 우리나라와의 유사성은 앞으로 꾸준하게 제기될 이슈 입니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기 때문인데요.
1. 쌀문화를 공통적으로 공유
2. 불교 문명의 시원적인 공간
3. 인도에서 출발하는 남방 문명의 중심이자 경로로서의 역할
때문에 누구라도(아니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스리랑카 박물관에 가신다면 한국 문화와의 유사성을 담박에 알아챌 지 모를 일입니다. 제가 몇 가지 사례만을 들어보겠습니다.

스리랑카 박물관에는 유독 탈~이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봉산 탈춤의 원형으로서의 탈춤 놀이가 이곳 스리랑카에서 중요한 문화더군요. 탈 모양이 아주 눈에 익숙하죠?

제가 한 눈에 깜짝 놀랐던 탈 입니다. 머리에 코브라 두마리를 얹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생소하지만 저는 순간 "앗 처용탈이다"하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생김새가 처용탈과 비슷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피부색이나 머리모양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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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처용 탈인데요. 다시 보니 많이 다르군요. 그런데 "처용이 서역인일지 모른다"는 기사가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박혁거세나 석탈해 등 신라 초기 중요한 인물들이 대다수 스리랑카나 인도에 많이 살고 있는 타밀인일지 모른다는 기사도 눈에 뜨이는 군요. 때문에 처용 역시도 이곳 스리랑카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순전히 학문적 밑바탕 없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 문화라는 게 온전하게 제 혼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경험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요런 스리랑카 장고 역시도 스리랑카가 우리나라와 쉽게 분리될 수 없는 문명권이라는 증거인 셈입니다. 정말 신기하게 닮았지요? 설마 우리나라에서 장고를 독자적으로 만들 수는 없었을 테고 어디에선가 영향을 받았다면 이런 자료들을 모으는게 중요할 텐데요. 민속문화박물관 학예사님들이 열심이 하고 있을 텐데 제가 잘 모르는 것 뿐일 겁니다.

요런 장독대 마처 비슷해서 깜짝 놀랬습니다. 우리나라 장독대는 인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인데 세상에 스리랑카에 비슷한게 있다느 놀랄 뿐입니다.

귀여운 코끼리 모습입니다. 생각보다 스리랑카에 코끼리가 많아서 놀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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