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신진식 선수>
---아무런 스캔들 없이 정상에서만 15년, 제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뿌듯함
---아무런 스캔들 없이 정상에서만 15년, 제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뿌듯함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이 거둔 마지막 금메달은 '배구'에서 나왔습니다. 여타 구기종목의 부진에 비해서, 배구의 선전은 참으로 돋보입니다. 연신 '돌아온 갈색 폭격기' 신진식 선수에 대한 얘기로 스포츠 뉴스가 그득하군요. 2004년도에 대표팀에서 은퇴를 했지만, 올림픽 예선에 실패한 죄가로 이번에는 후배들을 위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고 합니다. 어느새 국가대표팀만 11년째. 노장이란 소리를 듣는 한국 대표의 대들보 입니다.
저와 그는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ㅋㅋㅋ.
우선 제가 그를 아주 잘 안다는 것. (물론 그는 저를 잘 모를테지만요) 우리는 동기동창일겁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아닌가?) 여하튼 그는 수업시간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같은 학년이다 보니 몇번 이야기도 나누었고, 그리고 제 친구들 모두 그와 친하니 왠지 친숙한 느낌입니다. 저는 99년에 있었던 그의 결혼식장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목동 방송회관)
그런 그는 어느새 15년째(청소낸 대표 포함) 꿋꿋하게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에서 뛰고 있습니다. 제가 고1때 부터 그의 존재를 알았느니 참 대단한 시간입니다.
힘겨운 배구선수들...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듯, 정말 이들의 청소년기는 무척이나 혹독합니다. 물론 인문계에서 공부를 한 수험생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저만해도 고등학교 시절 배구선수들을 보면서 일종의 존경심 같은 감정을 품었습니다. 그들이 수업에 나오지 않는 것을 '묵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힘든 이들에게 공부란 짐을 지우는 것은 죄악처럼 생각될 정도였으니까요.
5시 30분 기상. 6시가까지 운동장 20바퀴... 아침연습, 아침밥 먹고 잠시 휴식. 그리고 오전 훈련, 쉬고 오후 훈련...그리고 자유시간...대회 직전에는 야간훈련. 취침.

<한국 배구 90년대의 최고 스타, 신진식과 김세진>
기숙사에서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를 달달 외우는 것보다, 더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선수들은 대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이 같은 힘든 고행의 길에 입문하곤 합니다.
제 친구 중에, 문OO이란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S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친구죠. 그 친구는 초-중-고1까지 배구선수였습니다. 키도 크고 성격도 호방호방한 친구였지요.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진지하게 인생고민을 시작하더니, 배구를 포기하고 인문계로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단 3개월 만에 중학교 전과정을 마스터 하고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겨울기간에 마치 배구 연습하듯 무섭게 영어와 수학을 공부했고, 아주 자연스럽게 서울대 공대에 입학을 했지요. 언젠가 고등학교의 초청으로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기도 했지요. -------요는 그만큼 공부보다 스포츠가 어렵다는 의미 입니다.
신진식 선수?
신진식 선수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큰 키가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모든 학생들이 그의 키에 대해서 걱정을 해주곤 했습니다. "저 친구는 대단하긴 한데, 키가 작아서 크게 성공은 못할거야"
진식이의 키는 190cm가 채 안됩니다. 네이버에 188cm라고 나와있지요. 실제는 그보다 조금 더 작겠지만. 키 작은 배구 농구 선수들의 비애는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이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IQ나쁜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천형입니다. 물론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는 그리 작은 키는 아니었습니다.
키가 작은데는 이유가 있겠죠. 신진식 선수를 비롯해서, 제가 다니던 학교의 운동선수들은 모두가 가난했습니다. 지방에 돈 많은 집도 거의 없었고, 더구나 조금 사는 집에서 운동을 시켰을 리가 없지요. 예전에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크로그램에 그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의 고향 역시 평균 이하의 소농집안이었습니다. 어릴적 영양 부족이 그의 키를 작게 만든 것이였겠죠.
하지만 그는 키의 단점을 성실한 노력으로 극복한 케이스 입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이 뛰기 위해서 그가 기울인 노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와 같은 체육관을 썼던 고등학교 동기들이나 아는 느낌이지요. 정말 성실하게 운동을 한 친구고, 결국 그를 잡기 위해서 고3때는 최대의 스카우트 전쟁까지 일어났습니다. 참 자랑스러운 동기였습니다. 결국 성균관대로 갔습니다.
배구는 신사적인 스포츠!!
배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배구란 스포츠가 참 신사적인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상대방과 신체접촉을 하지 않지만, 정말이지 너무나 격렬한 스포츠가 바로 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파이크의 힘, 그리고 블로킹의 반전, 그리고 후위 공격의 아름다움, 마지막으로 짜임새 있게 돌아가는 수비의 아름다움.
비록 인기 없는 프로스포츠이지만 배구의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을 매혹시킬 것입니다.
혹시, 배구선수들이 음주추태나, 혹은 숙소입소 거부, 집단폭행, 심지어는 연봉협상파행 이라는 뉴스를 접해본 적이 있나요? 없을 겁니다. 스포츠의 정신부터가, 신사도였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그런 신사의 이미지에 가장 어울리는 배구선수가, 제 기억에는 신진식 선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재미있는 뉴스가 나오는 선수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성실함 하나로 한국 배구를 이끌어 왔으니까요.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배구인생 거진 20여년에 존경의 예를 갖춥니다.
그는 참 열심이, 아름답게 뛰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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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최고의 책
Tracked from 미래 도둑 2006/12/20 11:15
1년에 한 번쯤 보는 어느 출판사 대표가 나를 찾아왔다. 출판사 대표라고는 하지만 사무실은 그의 집이요, 직원은 그 혼자다. 지난해 낸 여행서는, 아주 독특했지만, 1쇄만 찍고 사라졌다. 소..




Leave your greetings here.
신진식 선수와 동창이시군요, 그러면 저에게는 선배님이 되실 것 같습니다. N고 맞으신가요..? ^^
눈이 내린 아침에 읽은 좋은 글^^
글 참 조~타.
난 오늘 야근이다. 호자이 네 글이 힘이 될 듯..
제게는 고교배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팀이 백산고고, 그 다음이 남성고입니다. 부안의 면단위 작은 학교에서 이재필, 신대영, 이명학이 동기생으로 뛰었다는 것이 기적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고는 신진식이나 문병택, 이호같은 스타급 선수도 나왔지만 탄탄한 조직력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팀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유명 팀들에 비해 유난히 선수들 신장이 작았던 것 같습니다. 신진식선수나 이호선수는 단신이라는 약점을 높은 점프와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보완하며 쌓았던 고교시절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진학 후까지 상당기간 저평가를 받았던 것을 보며 아쉬워하던 기억도 아련하네요. 특히 김세진과 신진식의 비교에서는 무게추가 심하게 김세진선수 쪽으로 쏠렸었지요. 이런 편견을 실력으로 극복한 이들은 존경받을만 하지요.
앗. 선배님이시군요^^ 저는 현재 상무 리베로로 있는 염순호와 동기입니다^^ 저 역시 그 친구와 중학교때부터 친해서 더욱 글이 공감이 갑니다.
반갑네요....학교 근처에 있음 함 보죠
이 위치는 아니라 유익한뿐 재미있는다!